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한국 영화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으로, 거친 리얼리즘과 사회적 분노, 그리고 젊은 감독의 실험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 글에서는 류승완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 영화 문법, 연출 스타일, 그리고 이후 필모그래피로 이어지는 세계관의 출발점을 심층 분석한다.
리얼리즘과 속도감이 만든 초창기 영화 문법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4개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에피소드가 느슨하게 연결되면서도 공통된 정서를 공유한다. 류승완 감독은 이 작품에서 상업적 완성도보다는 ‘현실의 질감’을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 인물들은 불안과 분노, 폭력 속에 살아가며, 카메라는 그들의 일상을 따라다니듯 거칠게 흔들린다. 이러한 촬영 방식은 감독이 추구한 리얼리즘의 핵심이었다. 특히, 당시의 저예산 제작 환경은 단점이 아닌 ‘현실감 강화 장치’로 작용했다. 조명 대신 자연광, 스테디캠 대신 핸드헬드 촬영을 활용해 도심의 거친 공기와 인간 내면의 폭발을 생생히 포착한 것이다. 또한 편집 속도와 내러티브 구성에서도 기존 상업영화의 규칙을 벗어났다. 빠른 호흡의 컷과 불안정한 시점 전환은 인물들의 내적 혼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이런 감각적 편집은 이후 <아라한 장풍대작전>, <부당거래>에서도 이어져, ‘류승완식 리듬감’이라는 고유한 문법으로 발전했다. 즉, 그는 데뷔작에서 이미 “한국적 리얼리즘 액션”의 원형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분노와 세대 정서의 폭발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는 늘 ‘분노’가 존재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주인공들은 사회의 가장자리에 몰린 인물들이다. 그들은 정의를 믿지만 동시에 폭력에 의존하고, 사랑을 갈구하지만 파괴를 선택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심리는 당시 IMF 이후 한국 사회의 불안정한 정서와 맞닿아 있었다. 감독은 그 시대 청년들의 ‘좌절된 이상’을 표현하기 위해 거칠지만 진심 어린 대사를 사용했다. 대표적인 명대사 중 하나인 “세상은 죽거나, 나쁘거나야”는 단순한 허무주의가 아니라,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냉소적 통찰로 읽힌다. 류승완은 이 대사를 통해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면서도,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는 세대의 생존 본능을 드러냈다. 또한 영화 속 형제 관계는 감독 자신의 경험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동생 류승범이 출연한 이 작품은 가족적 유대와 예술적 실험의 결합체였다. 감독은 혈연적 리얼리티를 극대화함으로써 인물 간 감정선을 더욱 생생하게 살려냈다. 이러한 서사는 이후 <피도 눈물도 없이>와 <베테랑> 등으로 이어지며, 사회 구조 속 개인의 분노를 일관되게 탐구하는 류승완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저예산의 한계를 예술로 바꾼 연출 철학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은 불과 5천만 원 남짓한 예산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그 제약은 오히려 창의력의 발판이 되었다. 그는 한정된 자원 속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보다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집중했다. 카메라 워킹, 배우의 즉흥 연기, 공간의 활용 등 모든 요소는 현실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였다. 예를 들어 좁은 골목에서 벌어지는 격투 장면은 대규모 세트 없이도 강렬한 긴장감을 전달한다. 또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해 불필요한 설명 대신 시각적 충돌을 선택했다. 이런 연출 철학은 류승완을 ‘현장의 감독’, ‘배우의 감독’으로 불리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는 영화 제작을 ‘생존의 예술’로 바라봤다. 제작비, 시간, 장비의 부족을 탓하지 않고, 그 제약을 스토리의 일부로 흡수했다. 이는 한국 독립영화계에 강한 자극을 주었고, 젊은 창작자들에게 “가능성은 환경이 아니라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데뷔작 이후 류승완은 이 철학을 기반으로 상업성과 예술성을 모두 잡는 감독으로 성장하게 된다.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단순한 데뷔작이 아니라, 한국 영화 리얼리즘의 새 장을 연 선언문이었다. 그는 한정된 조건 속에서도 강렬한 메시지와 감각적 연출로 자신만의 영화 문법을 확립했다.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난 분노, 속도, 현실감은 이후 그의 모든 작품에 흐르는 근원이 되었다. 지금 돌아봐도 이 영화는 “한국 영화감독 류승완이 누구인가”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원점이라 할 수 있다.